12월 기도편지 – 루카스종 선교사 (동아시아)

(제 78 신)
사랑하는 동역자님들께, 2017. 12.24
그동안 평안하셨는지요?

오랜만에 맞이한 안식년, 보통 사람들에게는 그저 일상인 그 삶을 다시
적응하기 위해 저희 부부 지난 몇 달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분주하게 보냈습니다.
아침에 눈길을 운전하여 막내를 학교에 바래다 주고 돌아와서 책상에 앉습니다.
올해가 가기 전에 성탄 새해 인사를 드려야지 하면서 며칠간 숙제처럼 벼르다가 오늘
마음을 다잡고 편지를 씁니다. 올해 이곳은 영하 화씨 20 도의 추운 성탄절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아침부터 하염없이 눈이 내리는 것을 보니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될 것
같습니다.

(1) 천국 비자
영주권을 다시 신청했습니다. 5 년에 한번씩 돌아오는 이 홍역을 또 치루어 내어야
선교지로 들어갈 수 있는 비자를 받을 수 있습니다. 원래 2006 년 영주권을 처음
받았던 그 때에는 막내를 낳으러 잠시 들렸다가 어부지리로 얻게 된 것입니다. 당시
유학원을 운영하던 대학 동창이 제 나이가 전문인으로 기술이민 신청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니 속히 신청하라고 자기 일처럼 나서서 도와주는 바람에 신청했다가 그냥 쉽게
받았습니다. 나중에 돌아보니 그것이 저희 가정을 위한 하나님의 배려요 은혜였습니다.
그 이후, 보수정권으로 바뀌면서 이 영주권이 없이는 선교지를 못 다니는 시절이 왔습니다.
지금도 여권을 가지고 제 선교지를 다니는 사람들이 극소수이지만, 그나마 영주권이 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이번에 영주권 신청을 위해 영사관에서 그동안 저의 출입국 기록을 얻어서
살펴보니, 지난 5 년간 대한민국의 국경을 넘은 횟수만 100 번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에서 국경을 넘어 출입을 하였으니 그것까지 합하면 200 번인 셈입니다. 제 3 국에서
다른 나라로 옮겨간 출입을 계산하면 능히 250 번은 될 것입니다.
제가 아내와 함께 유학으로 처음 국경을 넘은 것이 1988 년이요, Z국으로 떠난 것이 1994 년,
그리고 본격적으로 ㅁ국 일을 시작한 것이 2003 년이니 아마도 그동안 이리저리 국경을
넘어 여행한 횟수가 족히 1,000 번은 넘었을 것입니다. 이 기간 동안 저희가 가족이
다섯으로 늘었고, 그 다섯 가족이 대한민국과 ㅁ국과 Z국의 국경을 넘어
다니기 위해 “비자전쟁”을 치루어야만 했습니다. 다섯 가족 전체가 국경을 넘었던 횟수를
다 합한다면 훨씬 더 많겠지요? 그 속에서 우리 가족은 철저히 나그네 삶을 살았습니다.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국가의 국경이 생기고, 적대적 관계에 있는 국가 사이에서는
자격을 얻어 값을 치루지 않으면 비자를 얻을 수 없습니다. 아마도 다섯 가족이
지불해야만 했던 비자 값만 해도 지난 30 년간 어마어마한 큰 돈이 되었을 것입니다. 가장
적대적 관계에 있는 나라는 사단의 왕국과 하나님 나라이겠죠. 사단의 권세 아래 놓여
신음하던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 천국으로 들어가기 위해 반듯이 받아야할 “천국 비자”의
값을 치루신 것이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입니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그 값을 예수님이
치루심으로 우리가 천국 비자를 지니게 되었기에, 우리는 세계 어느 나라를 다녀도
담대하고 당당할 수 있습니다. 마치 로마의 시민권을 지닌 바울이 로마제국 어디를 가도
당당하게 일할 수 있었던 것 같이 말입니다. 그러나 바울에게 가장 큰 위협과 공격을
가했던 사람들은 이방인이 아니라 자신의 동족 유대인이었던 것처럼, 우리도 마찬가지의
어려움을 당하는 것 같습니다.
아내가 몇 년 전 영주권 때문에 재판을 치를 때 판사의 질문이 이것이었습니다.
“영주할 사람에게 주는 것이 영주권인데, 당신들은 영주권을 받으면 또
ㅁ국이나 Z국으로 가려 할 것 아닙니까? 그런데도 우리가 영주권을 주어야 합니까?”
사실 법적으로는 도무지 받을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그동안 영주권을 주셔서 우리가 이
일을 지속할 수 있었습니다. 저희가 하는 선교사의 일을 이곳 정부가 인정했기에
우리가 영주하지 않음을 알고도 영주권을 내 주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셔서 주셨기에 이번에도 필요하다면 또 주실 것이요 필요가 없다면 거두어 가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버지의 뜻이 있으시다면, 영주권이 잘 나올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 결과를 보면서 장차 우리 가정이 나아가야할 바를 정하기 위해 아버지
뜻을 살피려고 합니다.
성경은 철저하게 흩어진 나그네(디아스포라)의 삶의 이야기 입니다. 그 속에서 수많은
성경의 사람들이 믿음을 얻고 성장해 갔듯이, 저희 가족의 지난 30 년 디아스포라의 삶도
그러했습니다. 부르심을 받아 홍해를 가르듯 ㅁ국으로 떠났고 또 요단강을 건너듯
고향 땅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그곳은 그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니라 싸워서 얻어야만 하는 거친 땅이었습니다. 그 속에서 저희는 연단받고 또
다듬어지는 과정을 거쳐야했고 지금도 여전히 그 길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그 속에서
저희가 배운 것을 압축하면 <아칼아칼 무트무트>였습니다.

(2) 복음자리
이번에 와서 정착하는 과정에서 참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나그네로 살던
저희가 보금자리를 갖게 된 것입니다. 6 년전 떠나기 직전에 기적처럼 작은
원베드룸을 얻었습니다. 아내가 반주자로 섬기는 성가대에서 부동산을 하시는 집사님이
저희가 비싼 돈을 내고 늘 세를 얻어 지내는 것이 안타깝다고 하시며, 작은 시드머니만
있으면 은행에서 융자를 얻어 집을 살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제대로 경제생활을 해본 일이 없는 저희 부부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안가는
이야기였습니다. 전혀 이런 사정에 문외한인 저희들을 위해 그 집사님께서 자기 일처럼
열심히 뛰어다니시며 돌보아 주신 덕분에 정말 꿈같은 일이 일어나 작은 집을 사놓고
떠나게 되었습니다. 마침 준 사회주의 국가에서 태어난 막내에게 나오는
우유값(양육비)이 우리가 선교지에 떠나 있는 동안 통장에 차곡차곡 모여 있었는데,
그것을 시드머니로 해서 아파트를 살 수 있었습니다.
그 바람에 두 아들이 공부하는 동안 시름을 놓을 수 있었고,
장남의 신혼을 거기서 보낼 수 있었을 뿐 아니라 가끔씩 방학 때 나와 단기로 지낼 때에도
우리가 거처할 보금자리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이번에 다시 안식년을 오게 되었을 때 지낼 투베드룸을 얻기 위해 그
집을 세를 주고 당분간 투베드룸으로 세를 들어가려고 계획을 했습니다. 그냥
학교 근처에 작은 방을 얻어서 혼자 지내라고 했지만, 오랜만에 가족과 함께
지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것을 알고 마음을 바꾸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뜻밖의 일이 벌어졌습니다. 한국에서 40 년 동안 한 자리에서 오래된 아파트를 가지고
계시던 장모님께서 최근에 그것을 파셨는데 그 남는 돈으로 저희들을 위해 딸과 손자에게
미리 증여를 해 주시는 바람에 또 예기치 못한 투베드룸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불가능해 보이는 은행 융자를 얻느라 엎치락 뒷치락 하면서 애를 태우는 등
설명하기 힘든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다시 그 집사님의 도움을 받아서 결국 마지막 순간
저희 가족에게 딱 맞는 아담한 집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아내는 처음으로 가져보는 아늑한 보금자리가 처음에는 꿈만 같아서 안절부절 잘 적응이
안된다고 하였습니다. 두 아이와 남편을 위해 매일 아침 일어나 도시락을 세 개씩 싸고
부지런히 시장을 보고 청소를 합니다. 작은 한인 교회에서 아내에게 지휘를 부탁하여
시작했고, 이곳에는 널려 있는 것이 파이프 오르간인지라 열심히 교회를
찾아다니며 오르간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내년 봄에는 그동안 선교지에서 지내느라 잊고
지냈던 파이프 오르간 연주회도 꼭 하겠다고 다짐을 합니다. 그러나 아내의 주 업무는
따로 있습니다. 아침부터 일어나 기도를 시작하여 잠자리에 들 때까지 쉬지않고 멀리
한국뉴스를 보면서 끊임없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런 아내를 보면 지난 세월이
민족 같은 이슈에 대하여 아무 생각없이 살아오던 평범한 한 여자를 정말
하나님께서 많이 바꾸어 놓으셨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루종일 한국 인터넷 뉴스만 틀어놓고 보는 아내에게, “당신 뉴스 중독 아니야?”라고
물으면 한시도 조국이 걱정이 되어 뉴스를 놓을 수가 없다고 대답합니다. 모든
뉴스거리가 아내에게는 기도제목이 됩니다. 허락하신 이 집, TV 가 있는 이 아늑한 공간이 이제 나이가
들어가는 저희 부부에게 주신 하나님의 특별한 위로의 선물임을 깨닫습니다. 이
보금자리가 장차 남은 여생 동안 조국과 열방을 향한 기도의 통로가 되고 복음을
흘려보내는 “복음자리”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3) 통일 비전
지난 몇달 간 부르심을 따라 크고 작은 교회에서 말씀을 전하고 조국 대한민국의 통일에 대한 비전을
나누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본 한인교회에서 새해 첫 주부터 10 주간
통일비전교실을 열어서 연속 세미나를 해달라는 요청이 왔습니다.
민족 선교와 통일의 비전을 품고 달려왔는데, 늘 현장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느라 부대끼고 또 프로젝트에 함몰되어
단발적인 메시지를 전하며 외치고 다녔지만 정작 제대로 된 통일에 대한 내 자신의
견해와 안목과 전망을 정리한 일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그것을 정리하여 나눌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어서 기꺼이 수락을 하였습니다.
준비를 하다보니 통일의 비전을 나누기 전에 왜 우리 민족이 분단 상황 속에 들어가야만
했는지 역사적 원인을 바로 깨우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우리의
믿음인 기독교가 역사적 종교이듯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를 바로 이해하고 앞길을
예측하기 위해서는 과거에 대한 바른 이해와 역사 인식부터 똑바로 세워야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 과정 속에서 근대사에 우리가 복음을 받는 과정에서 일제 시대의 핍박이 시작되며
복음이 왜곡되었고 또한 핍박을 피해 해외 망명을 떠난 수많은 기독인들에 의해 한국의
기독교가 기형적이고 양극단적인 양태로 갈라지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개인구원 중심의 내세적 신앙을 가진 예수교와 사회구원과 독립을 위해 싸우다가 그
당시 사회주의 혁명 또는 공산주의로 넘어가게 된 수많은 기독인들이 존재했었다는
불행한 역사를 반추하게 되었습니다. 그 분단의 역사의 트라우마와 잔영 속에서 여전히
신음하고 고통받는 남과 북의 두 나라 그 백성,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반쪽으로
쪼개어 나누어 가진 후 싸우고 있는 현실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기형적
반목상황으로 나타난 것이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가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어쩌면 이 기회에 제 자신의 신앙부터 다시 점검하고 제가 가르치고 외쳤던 그 통일의
기도제목들이 대부분 열거가 되었네요. 다시 요약해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1) 한반도에 극한적 대립 상황을 풀어주시고 한국 교회와 디아스포라 교회의 성도들 가운데 회개의 영이 임하셔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2) 영주권이 무사히 잘 나와서 내년에 선교지로 다시 들어가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3) 허락하신 보금자리에서 자녀들을 잘 양육하고 어디든지 복음을 위해 기도하며 떠날 수 있는 베이스 캠프로서의 복음자리가 될 수 있도록
(4) 이제 분가해서 나간 큰아들 부부가 내년에는 꼭 새 생명을 잉태하고, 둘쩨와 막내가 학업을 통해 자신의 인생 비전과 부르심을 발견할 수 있도록
(5) 준비하고 있는 통일비전교실이 지난 사역을 정리할 뿐 아니라 장차 통일 일꾼들을 키워내는 데에 밑거름이 되는 준비작업이 될 수 있도록
(6) 두 학교에 닥친 어려움을 주님의 방법으로 이끌어 가셔서 그 속에서 일하는 동역자들 가정과 자녀들의 앞길을 열어주시도록
(7) 평양에서 예루살렘까지 흩어져 사역하는 제자들의 일터를 지켜주시고 두 예루살렘에 평화가 임할 수 있도록 기도가 끊이지 않기를 소원합니다.

성탄절을 맞이하여 큰 기쁨과 평화의 소식이 여러 동역자들 가정 뿐 아니라, 저 멀리 있는 땅에 숨죽이고 있는 많은 성도들과
또 백성들에게 까지 퍼져나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동역자들의 눈물의 기도와 물질적 격려에 힘입어 오늘도 이 길을 갑니다.
기도로 함께하시는 모든 동역자 여러분들의 가정과 일터와 자녀들 위에 하늘의 크신 위로와 축복이 임하시길 기원드립니다.
Zong’s Family 올림

**이글은 선교지의 보안상에 맞게 다시 편집한 기도편지 입니다. 이해 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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