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기도편지 – Zzong 선교사 (동아시아)

사랑하는 동역자님들께,

그동안 평안하셨는지요?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어제는 이곳이 대낮 37도의 폭염을 기록했습니다. 처음 발을 내딛었던 1994년 여름 서늘한 피서지를 연상하게 하던 이곳도 전지구적인 온난화 현상을 피하지는 못하고 있는듯 합니다. 내일은 무더위를 식힐 폭우가 쏟아진다고 하네요.

  1. 복음 원칙

저희 부부는 요즘 한 여름 더위를 무릅쓰고 집안 정리와 짐싸기에 여념이 없습니다.올 여름부터 저희 세 가족이 다시 안식년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안식년의 명목상 이유는 제가 사역을 지속하기 위해 만기가 다가오는 이곳 영주권을 다시 갱신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또한 지난 수년간 이곳에서 영적 전쟁을 치르느라 정말 지치고 힘들었던 저와 아내에게 휴식이 절실히 필요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잠재되어 있던 스트레스가 응축되어 마침내 암 수술까지 해야했던 시간들, 지금도 억류되어 있는 두 동역자의 안타까운 무소식이 가슴을 답답하게 합니다.

저는 지난 학기 강의 도중 유학을 떠나는 두 학생을 데리고 긴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대학교 졸업생들과 함께 만나 정을 나누고 사제간의 정이 무엇인지 그곳 학생들에게 가르쳐주는 순간부터 새로운 관계가 시작됩니다. 외국에서 그들을 맞이한 ㅎㅋㄹㄷ 형제 부부의 헌신에 감사하며 닷새간의 꿈같은 시간을 두 학생과 보냈습니다. 다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오랜 시간 함께 하던 모교수와 이어서 또 다른 동역자 ㅎㅅ선생의 소식이 매스컴을 통해 전해졌습니다.

그러자 주변에서 제가 다시 그곳에 들어가는 것에 대하여 극구 반대하는 목소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홀로 계신 어머니는 물론이요 동역자들과 아내까지 정색을 하고 반대하였고, 막내 딸 하나는 “아빠가 나를 사랑한다면 절대 다시 들어가지 마.”라는 쪽지까지 보내왔습니다. 기다리는 학생들과 동역자들을 생각하며 어찌할 바를 모를 답답함 속에 있을 때 다행히 두 아들이 어려운 상황일 때 아빠가 그곳으로 더 들어가야한다는 응원을 해 주었습니다. 오히려 그런 시간이 저의 믿음의 기초를 헤아려보고 부르심의 첫 순간과 우리가 그동안 무엇을 위해 지금까지 달려왔는지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예수의 제자를 자처하며 살아왔던 지난 시간들, 과연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이 질문을 해보면 대답은 너무나 간단해집니다. 부자와 기득권 계층과 권력자들의 바리새적이고 사두개적인 위선을 질타하시며, 소외되고 가난한 자들을 위해 이 땅에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 대로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그분을 닮은 삶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우리 자녀와 제자들에게 유산으로 남겨주는 것, 그것이 제 인생의 가장 큰 목표요 숙제인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그 급박한 상황 속에서 사회를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 몰아넣었던 지난 국정농단 사건과 대통령 선거가 임박해 있었습니다. 한 반도를 쥐고 흔드는 분열과 권력 투쟁의 소용돌이를 지켜보며 온 나라에 만연한 부정직과 부정의를 물리치고 새로운 통일 시대를 열고 하나님 나라의 공의와 복음적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새 정부가 들어서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투표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그곳으로 들어가기 직전 단 하루를 한국에 체류하기 위해 비싼 비행기표를 끊었습니다. 다음날 투표를 마친 후 그곳으로 들어가면서, 저를 생각하시는 기도 후원자 몇 분에게 아래와 같은 글을 보냈습니다.

<제가 브라질을 오가는 비행기 안에서 막 읽었던 책 “나는 ㄱㅅㅈㅇㅈ와 결혼하였다”의 마지막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자신의 신념과 사명을 지키기 위해 흑인 할렘가에서 그들을 위해 평생 교육자로 살았던 사람이 거꾸로 흑인 아이들에 의해 아내가 죽임을 당한 후에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내 원칙을 지키고 배반하지 않기 위해 아내를 배신했다”. 가지 말라고 만류하는 아내의 소망을 배신하고 떠나는 저에게 스스로 반문합니다. 내가 목숨걸고 지키고자 하는 원칙은 무엇인가? 우리가 믿고 지키고자하는 이 원칙이 지켜내는 도덕적 시스템 보다도 미약하다면 과연 우리는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가? 그리스도가 나를 살리기 위해 십자가에서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셨음을 믿는 그 믿음이 진정성을 가지려면 나는 마땅히 그 길을 가야만 할 것이다… 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왜 그 믿음을 공유한 사람들이 그 길을 가지 말라 하는지…. 투표를 마치고 그 이가 화해 통일을 향한 기초를 놓는 대통령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팔순이 훨씬 넘으신 노모와 먼길 떠나기 전 하루를 함께 보냅니다. 저는 늘 죄송한 아들 야속한 남편 미안한 아빠로 남아야만 하는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이들을 늘 배신해야만 하는 그 길, 그것이 예수께서 말씀하신 “너희가 부모나 아내나 자식이나 네 목숨까지도 미워하지 아니하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고 하신 그 길이겠지요? 그 길을 가야만 한다면 내일 평안한 마음으로 가고 싶습니다. 주여 제 안에 평안을 주소서.>

그곳에서 강의를 마치고 나온 후, 미리 그곳에 와 있던 대학 교환학생들을 붙들고 말씀과 비전을 나누었습니다. 통일 일꾼이 되겠다고 찾아온 기특한 학생들을 바라보며 한 줄기 소망을 느낍니다. 그들을 데리고 인근지역 전투와 참변의 피흘림이 있었던 독립운동가들의 터전 지역과 끌려가야만 했던 역사적 폭정 속에서 고통받았던 러시아 고려인들이 삶의 궤적이 이어진 인근 접경까지 돌아보았습니다. 강대국 사이에서 희생양으로 고난당했던 약소국가 민초들의 삶 속에서 자신을 던져 의를 취하고자 했던 사람들과 나라를 팔아서라도 자신의 배를 채우고자 했던 자들의 치열한 몸부림들이 뒤섞이고 점철된 지난 역사를 반추하며, 이제 통일을 전후하여 그와 유사한 소용돌이가 이제 또 다시 우리 민족을 둘러싸고 21세기의 역사를 가늠짓게 될 것을 예감합니다. 그 속에서 제가 키워낸 자녀들과 제자들이 다음 세대에 어떤 역할들을 하게 될지요? 20년전 대학에서 잠시 가르칠 때, 장차 여러대학의 제자들을 하나로 묶어 동아시아 시대를 주름잡는 하나님 나라의 주역으로 세우겠다는 제 비전을 나눈 일이 있습니다. 바야흐로 그 꿈이 현실로 다가오는 시대를 맞이하는듯 합니다. 그러나 기회와 함께 우리 민족의 운명을 가늠할 위기도 거대한 파도가 되어 몰려오고 있음을 예감합니다. 부르짖는 기도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2.천국 결재

25년전 어느 기술대학을 향해 기도하고 준비하던 시절, 그 당시 먼저 들어가 있던 J 형제의 간증을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석탄 매연과 흙탕물과 먼지에 휩싸인 연길시와 초라한 학교 교정, 그러나 그 속에서 일하시는 아버지의 생명 역사를 감동적으로 기술하며 그 말미에 그는 이렇게 썼습니다. “이곳은 아버지의 부르심의 확신이 없는 사람은 결코 와서는 안되는 곳입니다. 그러나 이곳은 아버지의 부르심의 확신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와야하는 곳입니다.” 그 강한 메시지를 받고 ‘부르심의 확신’을 받기 위해 얼마나 새벽을 깨우는 눈물의 기도를 했었던지, 그 당시 성령님을 통해 말씀을 통해 주변 환경을 통해 우리 부부에게 쏟아부어진 부르심의 확신은 너무나도 선명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불가능해 보이던 길을 떠났고 홍해를 가로지르는 역사가 있었던 것입니다.

두려움에 가득 찬 모습으로 잿빛으로 물들었던 이 땅을 밟았던 일곱 살 아들은 벌써 결혼을 하여 새 가정을 이루었는데 저희는 여전히 막내 딸 하나와 함께 단촐한 세 가족입니다. 연변 사역 중에 받은 선물 둘째 귀염둥이는 어느새 의젓한 대학생이 되어 방학을 맞아 홀로 리더십 캠프에 들어가 있고요, 사역 중에 받았던 더 놀라운 선물 막내딸은 사춘기 소녀가 되었습니다. 대략 10년에 하나씩 아이를 선물로 받은 덕분에 저희 부부는 항상 어린 아이 하나가 딸린 젊은 부부처럼 마냥 그렇게 30년을 살아왔습니다. 

정들었던 친구 이웃들과 이별하는 안타까움은 저희 부부 보다도 감수성이 예민한 막내딸이 더 힘들어 매일 밤 친구 집에서 다가오는 이별 연습을 합니다. 아내는 옷장 속의 옷들을 다 쏟아 내어 짐을 싸면서 꼭 필요한 것들만 남기고 이웃집 아이들과 동네 아줌마들에게 그동안 아껴오던 옷가지들을 나누어주기 시작합니다. 저는 지난 세월 출장을 다니며 그곳으로 실어 날랐던 책들을 정리하느라 꼬박 2주일을 보냈습니다. 하나하나 쌓여있던 먼지들이 털려 나가고, 오래된 사진첩들과 아이들이 받은 상장들과 숱한 증명서류들이 우리 가정의 지난 역사들을 회고하면서 묵은 책장 속에서 오랜 동면에서 다시 깨어났습니다.

떠날 날이 다가오자 매일 끼니마다 환송을 위한 동역자들과의 식사 약속이 잡히기 시작하는데, 마치 우리가 영원히 떠날 것처럼 생각하는듯 유난히 이번 안식년은 감회가 색다릅니다. 그것은 아마도 여기의 상황이 한치를 내다보지 못하는 오리무중에 있기에 내년에 돌아올 수 있을지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형편에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 가정 뿐 아니라 이모저모로 학교를 떠나고 휴직하는 가정들이 수십 가정이나 되다 보니 학교의 분위기가 무척 어수선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2017년의 유난히 무더운 여름이 소나기처럼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지난 세월 동아시아의 정치 경제적 부상으로 선교지의 환경이 급변했을 뿐 아니라 공동체 내부의 많은 모순 속에서 대학이 어려움에 처하게 되면서 우리 부부에게 던져진 질문은 이제 이곳을 떠날 때가 되었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아내는 우리가 아버지의 확실한 음성을 듣고 여기까지 왔는데 떠나라는 말씀이 없는데 어떻게 떠나느냐고 하며 그 때를 기다려 온 것이 사실입니다. 아직 떠나라는 분명한 천국 결재가 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아직 세상 물정도 제대로 모르던 서른 한 살의 나이에 척박한 이국 땅 연변으로 건너와서 이 대학을 아름다운 선율과 찬송이 넘치는 꽃동산으로 만들어가는데 가장 큰 역할을 했던 주역으로서 아내 최문선이 가지고 있었던 연변과기대에 대한 애정과 사랑은 다른 어떤 사람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남달랐을 것입니다. 

이번에 안식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 같은 아내에게 큰 변화가 있음을 옆에서 지켜보았습니다. 지난 학기에는 무너져내리는 모습을 바라보며 아내는 열병과도 같은 가슴앓이를 해야만 했습니다. 이번학기가 들어서자 아내가 갑작스레 자신의 오르간을 장춘의 그곳 교회에 기증을 해 버렸습니다. 한 교회가 부흥하여 교회를 크게 신축하였는데, 오르간을 놓기 위해 반주자를 양성하겠다고 아내에게 요청을 해왔습니다. 아내가 그 교회의 자매를 가르치던 중, 그녀가 연습할 오르간이 없음을 안타깝게 여겨 자신이 아끼던 오르간을 선뜻 교회에 기증을 해 버린 것입니다. 동아시아 오기 전에 자신은 오르간 없이는 못산다고 눈물 흘렸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아내를 동아시아으로 데리고 오기 위해 제가 몇 달치 월급을 투자하여 사 주었던 오르간입니다. 동아시아로 어마어마한 컨테이너에 이삿짐을 싣고 와서 시내 아파트에 짐을 올리던 중, 오르간부터 세팅해 달라고 떼를 쓰며 그 북새통에 바흐의 토카타 푸가를 연주하다가 엎드려서 울음을 터뜨렸던 그 유서 깊은 오르간입니다. 그것을 미련없이 기증해 버리는 아내의 단호한 태도에 오히려 제가 놀랐습니다. 스위스에서 유학까지 했다는 그 자매가 하나님 앞에 헌신된 모습을 보고 자신의 오르간의 새 주인으로 세우기에 손색이 없다고 판단한 아내의 결단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이제 아내가 이곳을 떠날 준비를 하는구나 하고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클래식과 팝의 만남>이라는 아내의 수업은 비록 음악 수업이지만 그 안에 서양 철학과 역사와 문화의 변천사 속에서 복음적 가치를 드러내는 그래서 수강학생들의 심성을 근원적으로 흔들어놓는 교양 밭갈이 과목입니다. 학생들이 마지막 제출한 소감문에서 자신의 인생을 바꾸어 놓은 과목, 4년간 들었던 과목들 중 최고의 과목… 이라고 표현하던 그 소중한 과목에 대하여 아내는 애정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가르쳐 왔습니다. 이번 학기에 들어서자 그녀는 마치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마지막 수업을 하는 것처럼 마음을 쏟아 강의를 했습니다. 몇 년 전 어느커피 사장과 브라질의 한 형제가 도와서 아름답게 꾸며놓은 음악실에서 마지막 학생들의 조별 발표가 끝나고 불이 켜지는 순간 뜻밖의 해프닝이 벌어졌습니다. 갑자기 다시 불이 꺼지면서 학생들이 준비한 깜짝 공연이 시작되었습니다. 학생들이 직접 작사 작곡한 노래가 화면에 올라가면서 “최교수님, 그저 고맙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네요. 당신이 보여준 헌신과 사랑에 대해 과연 어떤 말이 더 필요할까요? 당신은 정말 아름다운 사람이예요. 그동안 당신에게 받은 큰 사랑에 보답하고자 저희가 작은 선물을 준비했어요. 저희의 마음을 담은 마지막 노래, 들어주세요…” 이 같은 학생들의 은은한 사랑 고백이 흘러나올 때 아내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23년간 학생들을 위해 헌신했던 마지막 열매를 거두는 순간이었습니다.

아내의 강의가 소문이 나면서 몇 년 전부터 인근의 사업가들 정부관리들을 모아서 강의하는“최고경영자과정”에서도 매 학기 음악 특강을 부탁해왔습니다. 그러던 중 시내에서 격조 있는 레스토랑을 하는 어느 여자 최모 사장님이 아내의 강의를 듣고 감동을 받아 집의 남편에게 달려가서 자랑을 했던 모양입니다. 묵묵히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남편은 “여보 그 최 선생이 20년 전 나에게 찬송가 반주를 가르쳐 주었던 그 분인 것 같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남편 심 선생은 교회 반주자를 양성하는 학원을 운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정말이예요?” “여보 기억 안나? 우리 첫 아이 낳았을 때, 하기스라는 기저귀 한통을 내가 당신에게 가져다 준 일 있었지? 그때 그것이 최교수가 내게 준 것이었어.” 아내가 그 곳 생활 초창기에 험한 눈길을 시외버스로 달려가면서 교회 반주자 양성을 위해 애쓰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때 가르쳐준 제자 중 한 사람이 바로 최사장의 남편 심 선생이었던 것입니다. 그 사실을 깨닫게 된 두 내외가 저희 부부를 정식으로 자기 레스토랑에 초대하여 근사한 저녁식사를 대접하였습니다. 연길 생활 중 처음으로 촛불과 와인이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할 때, 과묵한 그 남편이 한참 만에 말문을 열었습니다. 오래 전 기저귀 선물을 받았던 것에 대해 먼저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우리가 둘째를 낳아 키우던 그 시절 그곳에서는 모든 물자가 귀했던 상황이었는데, 늘 베풀기를 좋아하는 아내가 함께 갓난아이를 키우는 제자에게 한국서 가지고 온 기저귀 한통을 선물로 주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심선생에게는 그렇게 큰 감동이 되었고 그가 평생 잊지 않고 거저 받은 것을 거저 주는 삶의 귀감을 삼았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시절 최선생님으로부터 음악만 배운 것이 아니라 크리스천의 삶을 함께 배웠습니다. 저는 신학을 마쳤으나 동료들이 목회현장으로 나갈 때 내게 주어진 사명은 이 나라에 진정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교회 반주자를 양성하는 것이라 여기고 지난 20년을 오직 한 길만 걸어왔습니다. 그동안 제가 양성하여 중국 곳곳에 보낸 반주자만 해도 2,000 명이 넘습니다. 그들은 조선족이 아니고 거의 모두가 한족과 남방의 소수민족 지역에서 배우러 찾아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을 때, 우리 부부는 너무나 놀랐고, 아내는 감격을 이기지 못해 다시 눈물을 흘렸습니다. 옆에서 듣고 있는 저는 문득 아주 오래된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바흐와 오르간을 우상으로 삼던 교회반주자를 음악의 오지 땅에 데리고 와서 초창기 고생을 시키며 아내의 눈물을 지켜보던 그때 그 시절이 있었습니다. 저에게 성령께서 감동을 주셔서 후원자들에게 기도편지를 보내면서 이렇게 믿음의 고백을 했던 생생한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은 찬송이 들리지 않는 척박한 땅,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듯 이 적막감 속에서 갇혀 있는듯 하나, 장차 아내의 눈물의 헌신을 통해 이 넓은 대륙에 하나님을 찬송하는 찬송가 소리가 울려 퍼질 것이며 아내는 교회 음악의 대모가 될 것을 믿음으로 선포합니다.” 연약한 우리는 세월이 지나면서 그 기도조차 잊어버렸는데, 우리 하나님께서는 잊지 않으시고 그 눈물의 기도를 기억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심 선생의 말을 듣는 동안, 저와 아내가 동시에 들었던 음성은 “그래 내가 너희의 수고를 안다. 그동안 참 애를 많이 썼구나. 내가 이미 너희의 헌신을 받았고 그 열매를 거두었으니 이제 내 안식 가운데 들어가라.” 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일 후로 아내는 이제 이곳을 떠나도 된다는 천국 결재를 받은 사람처럼 온 집안을 뒤집어 엎어서 정리를 시작했습니다. 정들었던 성가대에서의 마지막 지휘와 마지막 예배 오르간 후주가 끝난 후, 격정을 참지 못해 또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그리고 동역자 가족들의 기도와 배웅을 받으며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3. 안식 기도

이제 일년의 안식년 후, 우리 부부의 삶이 어디를 향할지 다시 아버지 손에 의탁합니다. 그 기간 동안 지난 25년을 섬겨온 대학들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 다 내려 놓아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곳에 더 이상 들어갈 수 없다면 이제 함께 다른 그곳으로 가게 될지, 열 두 살 막내 딸이 사춘기를 극복하고 함께 따라갈 수 있을지, 아니면 오빠들에게 막내를 맡기고 떠나야 할지 고민이 많습니다. 어쩌면 최근에 여러 목사님들을 통해 주신 말씀처럼 남쪽을 위해 일을 해야할 수도 있습니다. 이제 임박한 위기 시대에 교회와 청년들에게 통일의 꿈과 비전을 심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면서, 남쪽 그곳으로 베이스를 옮겨서 일할 것을 권면 받기도 했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도 저희 부부가 진지한 고민을 해야할 것 같습니다. 아니 요즘 시대는 더 이상 고정된 베이스가 중요하지 않은 시대이기에 한반도와 동아시아 그리고 세계를 오가면서 “막힌 담을 허무는 그 작업”이 더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이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주님의 섭리 가운데 맡기며 길을 떠납니다. 아무쪼록 이번 안식년이 아버지의 안식 가운데 더 깊이 들어가는 축복의 기간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기 도 제 목]

  1. 새로 시작하는 안식년 기간 가정 예배를 통해 말씀과 찬송으로 더 깊이 나아가며, 저희 가족을 향하신 아버지의 뜻을 확인할 수 있도록
  2. 이곳에서 4식구가 지낼 안식처, 투베드룸 아파트가 순조롭게 구해지도록. 큰아들 가정에 생명이 잉태되도록.
  3. 9월학기 강의를 짧게 마치고 나온 후 곧바로 영주권 신청에 들어갑니다. 영주권이 순조롭게 갱신되어 북을 오가는데 지장이 없도록
  4. ㅎㄷ대학교와 D공동체가 함께 추진하고자 계획하는 대학식당운영프로젝트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정치적 상황들이 잘 풀려갈 수 있도록
  5. 유학중인 두 유학생이 지식과 안목이 열리고 영육의 깊은 변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다른 학생들의 해외유학의 길들이 계속 열리도록.
  6. 기로에 선 동아시아 대학과 동역자들의 앞길을 주님 손에 의탁합니다. 1년동안 새 리더쉽이 등장하고 구체적인 비전과 변화의 소망이 나타나도록. 그 일에 지난 25년간 배출된 졸업생들이 주역이 될 수 있도록
  7. 민족의 화합과 통일의 꿈을 남북한 학생들과 디아스포라 청년들에게 잘 전달하고, 통일 세대들을 키워낼 수 있도록. 동아시아 3개의 대학의 영적 연합이 이루어지도록.

동아시아에서 쓰기 시작한 편지가 이제 한국을 거쳐 그곳으로 향하기 직전 마무리가 되었네요. 끝없이 움직여야 하는 삶이 저희에게 주어진 부르심인듯 합니다.

여러분들의 눈물의 기도와 물질적 격려에 힘입어 오늘도 이 길을 갑니다.

기도로 함께하시는 모든 동역자 여러분들의 가정과 일터와 자녀들 위에 하늘의 크신 위로와 축복이 임하시길 기원드립니다.

Zzong Family 올림

About the Author